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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배우의 출현
지구 상에서 원시 바이러스가 탄생한 초기, 바이러스는 어떻게 자신들을 유지하면서 생존해왔을까? 원시 바이러스도 오늘날 바이러스와 마찬가지로, 숙주가 단세포 생명체에 기생하는 순간부터 그들이 서식하는 기간은 그 숙주가 살아있는 동안으로 제한되었을 것이다. 숙주가 죽어버린다면, 바이러스도 그 숙주에서 더 이상 증식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숙주 개체로 옮겨가야 한다. 바이러스가 숙주 개체 간 전염을 통해서 바이러스 생태계를 유지하려면 그들이 서식하는 숙주가 어느 정도 이상 규모의 집단을 형성하고 있어야 하고, 밀접하게 교류하고 잇어야 가능하다. 오늘날, 우리의 바닷속에는 1L당 수십억 개의 바이러스가 존재한다. 이와 같은 엄청난 바이러스의 밀집성은 바이러스가 서식하는 숙주, 특히 세균 또한 그만큼 풍부하다는 ..
2020.05.04 -
닭과 계란 딜레마
2010년 6월, 영국 워릭 Warwick대학의 마르크 로저 Mark Rodger 연구팀과 영국 세필드 Sheffield 대학의 콜린 프리만 Colin Freeman 연구팀은 독일 화학협회에서 발간하는 저명 학술지 에 라는 한 논문을 게재했다. 이 논문이 게재되자 영국 워릭대학은 언론 보도를 통해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에 대한 수천 년간 이어진 난제에서 '닭이 먼저'라는 것에 부분적으로 어떤 힌트를 제공할지도 모른다고 발표했다. 이를 영국 잡지에서 닭이 존재하는 특정 효소가 없으면 계란이 생길 수 없다는 한 공저자의 인터뷰 내용을 실으면서 마치 '닭이 먼저'라는 결론을 제시했다는 제목의 과장된 기사를 내보냈고, 전 세계 언론들도 여기에 가세하여 그것을 기사화했다. 국내 일부 언론에서도 이를 기..
2020.05.04 -
온순하지만 때로 난폭한
평균 직경 100nm(나노미터, 길이 단위의 일종이며 10억 분의 1m)! 바이러스는 자신의 유전자에 단백질 껍데기를 뒤집어쓴 이 단순하고 작은 나노물질에 불과하다. 이러한 바이러스는 세포를 임대하여 살아가는, 매우 전략적인 선택을 구사한다. 바이러스가 구사하는 임대방식은 아파트 전월세보다는 빌트인 콘도나 오피스텔 임대라고 보는 것이 좀 더 정확할 것 같다. 그래서 바이러스가 죽느냐 사느냐 그것은 숙주세포에 달렸다. 거꾸로 말하면 숙주세포가 존재하는 한 바이러스는 서식처를 보장받는다. 바이러스는 '자연 숙주'라는 정해진 서식처에서 살아간다. 거기에서 바이러스는 숙주에 큰 위해를 가하지 않는 선에서, 즉 숙주의 면역체계라는 무기가 무리하게 가동되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번식을 하고, 숙주 역시 바이러스를 무..
2020.05.03 -
교묘한 전술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한다. 강산만 변하는 게 아니라, 바이러스 세상도 변한다. 10년이 경과하는 동안에 바이러스의 세상은 수많은 변화의 모습을 보여왔다. 바이러스 습격의 위험으로부터 인간과 동물을 보호하기 위하여 수많은 백신들이 사용되었다. 바이러스는 숙주 자체의 면역 장벽뿐만 아니라, 자신들과 동종인 백신이 만들어놓은 숙주 면역과도 싸워왔다. 그래서 바이러스에 따라 전염병 유행의 부침을 거듭하기도 하고, 그 와중에 숙주의 면역체계를 회피하는 방향으로 지속적으로 변신을 거듭해왔다. 온순한 바이러스는 숙주와 타협하는 방향으로 공생하는 선택을 했다. 어느 날 새로운 바이러스가 문득 인간세상에 출현하는가 하면,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숙주의 멸종으로 어떤 바이러스는 서식처를 잃고 졸지에 사라졌을..
2020.05.03 -
아군끼리 경쟁하기
2010년, 우리 연구팀은 닭에게 치명적인 뉴캐슬병을 예방할 수 있는 국산 백신을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국내 백신업체들과 공동으로 진행했다. 조류에 서식하는 10여 개의 파라믹소 바이러스들 중 첫 번째 종으로 분류되는 이 바이러스는 일주일 내 양계장 닭들을 100% 죽일 수 있는, 매우 치명적인 바이러스로 양계산업에서 공포의 대상이다. 주변 아시아, 중동 지역, 아프리카 등지에서 이 바이러스 유행으로 양계 피해가 속출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이 질병을 근절하는 데 성공한 것이 국내 양계산업에서는 그나마 다행이다. 뉴캐슬병 바이러스 중에는 닭에 매우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있는가 하면, 닭을 죽이지 않는 착한 바이러스들도 자연계에 존재한다. 우리 연구팀은 그런 착한 바이러스를 자연계에서 찾아내어 백신용 종자 ..
2020.04.30 -
바이러스, 상상할 수 없는 다양성
만약 우리들 중 누군가가 유전자 염기서열의 차이가 1% 정도 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인간은 23쌍의 염색체 속에 30억 개 유전자 DNA 염기쌍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지구 상에 살아가는 70억 명은 모두가 완전히 동일하지도 않고 모두가 독특하고 고귀하다. 같은 부모로부터 태어났다고 해도 완벽하게 같은 복제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같은 부모 슬하의 자녀들이 모두가 동일하다면 대대손손 이어져 오면서 수많은 동일한 인간을 양산했을 것이고, 그 사회적 혼란은 상상할 수조차 없다. 사람 개체 간 차이를 나타내는 데는 유전자 염기서열의 차이가 최대 0.1%, 즉 유전자 염기서열상 300만 개의 차이만으로도 충분하다. 인간 게놈 전체로 볼 때 매우 사소한, 그리고 매우 미묘한 차이로..
2020.0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