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상상할 수 없는 다양성

2020. 4. 29. 22:19바이러스

만약 우리들 중 누군가가 유전자 염기서열의 차이가 1% 정도 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인간은 23쌍의 염색체 속에 30억 개 유전자 DNA 염기쌍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지구 상에 살아가는 70억 명은 모두가 완전히 동일하지도 않고 모두가 독특하고 고귀하다. 같은 부모로부터 태어났다고 해도 완벽하게 같은 복제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같은 부모 슬하의 자녀들이 모두가 동일하다면 대대손손 이어져 오면서 수많은 동일한 인간을 양산했을 것이고, 그 사회적 혼란은 상상할 수조차 없다. 사람 개체 간 차이를 나타내는 데는 유전자 염기서열의 차이가 최대 0.1%, 즉 유전자 염기서열상 300만 개의 차이만으로도 충분하다. 인간 게놈 전체로 볼 때 매우 사소한, 그리고 매우 미묘한 차이로 사람의 개성과 특성을 구분 짓는 것이다. 우리와 가까운 침팬지와 인간의 게놈 유전적 차이가 얼마가 되는지에 대해서는, 게놈 유전자 염기서열 해석의 차이에 따라 5%에서 1% 내외까지 다양하게 존재한다. 어쨌든 단 1%의 차이, 즉 양 3,000만 개 DNA 염기쌍의 차이는 보통의 사람과 완전히 다른 형상을 만들어 낼 수도 있을 것이며, 심지어 인간으로 분류하기가 어려울지도 모른다. 인간에게 있어서 1%는 결코 사소한 차이가 아니라 어마어마한 종의 영역을 넘나드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바이러스 세계에서는 어떨까?

같은 바이러스종이라도 바이러스 개체들 사이에 얼마나 많은 게놈 유전자가 염기서열에서 차이를 보일까?

바이러스는 가장 원시적인 존재이고, 게뇸 유전자 덩치가 워낙 작아서 핵산 수가 그리 많지 않다.

일반적으로 바이러스는 종에 따라서 수천 개에서 수십만 개의 유전자 핵산을 가지고 있다.

평균적으로는 약 1만 개 정도의 유전자 핵산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생물학적 존재로서는 믿기 힘들 정도로 적은 수이다. 현재까지 지구 상에서 가장 큰 바이러스로 알려진, 아메바를 서식으로 삼는 판도라 바이러스(Pandora virus)도 DNA 핵산 수가 250만 개를 넘지 않는다. 그래서 바이러스 유전자에서 돌연변이나 유전적 변화가 생기면 그 차이는 크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유전자 복제기술이 고등동물만큼 정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극단적인 사례는 바이러스 증식과 복제, 단백질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바이러스 유전자 부위 일부에 돌연변이와 같은 유전적 변화가 생기면 바이러스의 기능이나 숙주 영역에 의미 있는 변화가 나타나는 것이다.

 

고등동물에서 수백만 년에 걸쳐 서서히 분화가 진행되어 종의 진화가 나타나지만, 바이러스의 경우 고등동물과는 확연히 다른 차원이 존재한다. 고등동물종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유전적 다양성을 바이러스 세계에서 볼 수 있다. 같은 바이러스종이라 하더라도 바이러스 개체에 따라서 유전자 염기서열의 차이가 1% 이상 존재하는 것은 부지기수이다. 예를 들면, 같은 바이러스종 중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유행하는 바이러스와 한국에서 유행하는 바이러스 간에는 바이러스 게놈 유전자 염기서열의 차이가 1% 이상 나는 것이 흔하다. 심지여 같은 지역 내 유행하는 바이러스들 사이에서도 유전적인 차이가 제각각인 경우가 허다하다. 심지어 바이러스종에 따라서는 바이러스 개체들 사이에 유전적 차이가 하도 심해서 유전자 염기서열의 차이가 수십 % 심지어 50% 이상 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코로나 바이러스와 같은 유전적 변이가 심한 바이러스종의 경우, 바이러스 개체 간 유전자 염기서열 1% 정도의 차이는 바이러스 간 변이가 거의 없는 동일한 바이러스라고 치부할 정도이다. 바이러스의 세계에서 시시각각으로 일어나는 유전적 변이는 어디에서 시작되는 것일까? 무엇이 문제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끈질긴 생존의 법칙을 가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 하루.

바이러스가 한 세대를 거치는 데 필요한 기간이다.

바이러스종에 따라 수시간에서 수일이 걸릴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바이러스는 세포에 감염되고, 세포 속에서 후손 바이러스를 만들어내는 데 하루면 충분하다. 한 세대를 거치는데 평균적으로 30년이 걸리는 우리 인간에 비교할 바가 아니다. 인간이 천천히 기어가는 거북이라면, 바이러스는 고속도로를 과속으로 달리는 차와 같다. 우리가 한 세대를 교체하는동안 바이러스는 수만 세대를 거칠 수 있다. 빠른 유전적 변이와 맞물려 광속의 세대교체는 바이러스의 진화 속도에 가속도를 붙여 오늘날 지구촌 모든 생명체에서 바이러스가 서식할 수 있도록 엄청난 유전적 다양성을 부여하는 토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