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신종 바이러스 출현, 박쥐가 주범?

2020. 4. 27. 19:01바이러스

2003년 사스 바이러스 출현 이후 박쥐는 전 세계 바이러스 학자들로부터 집중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일종인 사스 바이러스가 중국 관박쥐로부터 기원했다는 설이 다수의 견해로 자리를 잡은 이후의 일이다.

 

사실 오래전부터 박쥐는 코로나 바이러스 이외에도 사람에게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상당수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바이러스가 광견병 바이러스다. 전 세계 수많은 박쥐 종들이 광견병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다. 박쥐에 물리거나 접촉을 통해, 또는 박쥐로부터 감염된 개, 너구리 같은 2차 동물 등에 물려서 걸리는 공수병으로 전 세계에서 매년 5만 5,000여 명이 사망한다. 중국 사스 바이러스뿐만 호주 핸드라 바이러스, 말레이시아 니파 바이러스, 아프리카 에볼라 바이러스 등 사람에게 치명적인 신종 바이러스의 기원으로 박쥐를 지목하고 있다. 심지어 최근 중남미 지역 박쥐 종들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조상에 해당되는 바이러스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최소한 신종 바이러스에 관한 한 박쥐를 빼놓고 논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박쥐는 어떯게 그렇게 많은 바이러스들을 보유할 수 있을까?

최근 들어 사람에게 치명적인 박쥐 바이러스가 왜 그렇게 자주 출현할까?

 

현재 지구상에는 약 5,000여 종의 포유동물이 서식하고 있다. 이 중 박쥐 종은 약 1,240여 종으로 전체 포유동물 종의 약 25%를 차지한다. 지구 상에 존재하는 포유동물 중에서 설치류 동물(약 1,600여 종) 다음으로 생물학적 다양성이 풍부하다. 특정 숙주를 서식처로 하는 바이러스 특성을 고려하면, 이러한 엄청난 생물학적 다양성은 수많은 바이러스 종의 서식 환경을 만들 수 있게 해 준다.

 

전 세계에서 다양한 종류의 박쥐 바이러스가 분리되고 있다. 박쥐 코로나 바이러스만 해도 현재 유전자은행에 등록된 자료만 2,800여 개에 이른다. 전 세계 과학자들이 각종 박쥐 종이 가지고 있는 바이러스에 대한 탐구를 왕성하게 벌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박쥐 바이러스 저수지의 단지 일부만 파헤쳤을 뿐이다. 박쥐 집단이 우리가 마치 발견하지 못한 바이러스들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지 밝히는 데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다.

 

지구 상에 존재하는 박쥐는 약 5,250만 년 전부터 지구상에 서식해 왔다. 박쥐가 진화하면서 다양한 바이러스들이 박쥐의 몸속에 침투했을 것이다. 그리고 일단 박쥐의 몸속에 정착하는 데 성공하면서 박쥐와 바이러스는 긴 공생관계의 틀을 유지하며 살아왔을 것이다. 아마도 오늘날 사람 신종 바이러스들이 그러한 과정을 거쳐 박쥐와 공생관계를 이루는 데에 성공했을 것이며, 그 결과로 박쥐는 거대한 바이러스 저수지인 자연 숙주 역할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박쥐의 집단 무리 생활과 긴 수명은 바이러스가 그 집단에서 유행을 유지하는 데 이상적인 여건을 제공한다. 박쥐는 사회적 종물이라서 집단생활을 한다. 소형 박쥐들은 대개 한 동굴에 수백만 마리가 같이 살 수 있으며, 심지어 여러 종의 박쥐 종들이 서식할 수도 있다. 반면 대형 박쥐들은 소규모 무리 집단을 형성하며 집단 간 주기적인 교류도 행한다. 신체활동이 왕성한 번식기 동안 이러한 집단생활은 박쥐 개체 간 긴밀한 신체적 접촉을 통하여 바이러스와 전파가 쉽게 이루어질 수 있게 한다.

 

같은 공간에서 서로 다른 박쥐 종들이 서식하는 경우도 흔하며 그런 경우, 서로 다른 바이러스들의 뒤섞임 현상이 일어나는 '믹서기 동물' 역할도 가능해, 박쥐 집단 내에서 신, 변종 바이러스의 출현이 일어날 여지도 제공한다. 최근 밝혀진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스 바이러스 출현 사례가 대표적이다. 서로 다른 종의 중국 관박쥐 코로나 바이러스들이 박쥐 몸속에서 바이러스가 뒤섞이는 과정을 통해 사스 코로나 바이러스 같은 잡종 바이러스를 탄생시켰다는 것이다.

 

박쥐 대부분은 수십 년(5년 내지 50년)의 긴 수명을 가지고 있다. 긴 수명은 집단 내 존재하는 바이러스에 노출될 기회가 증가하고, 심지어 일생 동안 감염과 재감염을 반복할 수 있게 만든다. 또한 일부 박쥐는 동면과 일상 숙면을 취함으로써 저체온을 유지하면서 대사 에너지를 보존한다. 저체온과 대사 저하는 박쥐의 면역기능을 억제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여 몸속에 침투한 바이러스 청소를 늦추고 지속적으로 감염 상태를 가질 수 있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바이러스 배출 지속기간이 길어지면서 박쥐 집단 내 바이러스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박쥐는 포유동물 중에서 유일하게 비행능력을 가지고 있어 단기간에 병원체를 넓은 지역에 퍼트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박쥐는 매일 먹이를 찾아다니고 계절적으로 이주를 한다. 일부 박쥐 종은 심지어 거의 2,000km를 이동할 수 있다. 특히 과일박쥐종의 경우 메타 개체군 서식 생활을 하며 개체군 간 상호 접촉을 빈번하게 이룬다. 그러한 특성으로 인해 바이러스는 매우 폭넓은 지역에 분포할 수 있다. 최근 밝혀진 바에 따르면 니파 유사 바이러스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열대지역 과일박쥐 종 사이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들 지역에 서식하는 과일박쥐 종에게 신종 바이러스가 출현할 수 있는 우호적 환경인 푸시&풀 여건만 갖춰지면 언제든지 제2의 니파 바이러스 출현 사태가 초래될 수 있다. 1998년 말레이시아에서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던 바이러스가 2001년 이후 빈번하게 방글라데시와 인도 일부 지역에서 치명적인 인명 피해 사례로 나타난 것은 그 징후를 암시하는 것이다. 잠재적인 바이러스 시한폭탄은 여기저기 있다.

 

열대 지방에 서식하는 대형 과일박쥐는 번식기 동안 필요한 에너지 보충을 위해 엄청난 양의 과일을 먹어치운다. 박쥐는 연하 작용 대신 씹어 삼킨다. 그 과정에서 소화되지 않은 과일 조각을 토해내는데 감염 과일박쥐가 토해낸 과일 조각에는 많은 바이러스들이 묻어 있을 수 있다. 또 가뭄이나 벌목 등으로 과일 공급이 줄어들면 다른 야생동물과 먹이 다툼을 벌일 수 있는데 이때 바이러스 전염 위험이 증가한다. 대표적인 사례까 아프리카 에볼라다. 아프리카 원숭이들은 과일박쥐와의 먹이 싸움 과정에서 자주 에볼라 바이러스에 걸린다. 운이 없게도 그 원숭이를 잡아먹은 침팬지, 또는 접촉한 사람은 에볼라에 걸려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결론적으로 스필오버가 발생하기 위한 조건과 사건이 맞아떨어지면 박쥐는 새로운 숙주 동물로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는 이상적인 여건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특징들이 신종 바이러스가 박쥐로부터 자주 출현하는 이유가 된다. 그래서 지구 상에 박쥐가 사라지지 않는 한, 푸시&풀 여건이 지속되는 한, 야생동물에 대한 음식문화가 변하지 않는 한 신종 전염병은 언제든지 출현할 수 있다. 다음 무개다 어느 지역이 될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사실 박쥐는 지구상 자연 생태계 균형 유지에 긍정적인 역할을 많이 하고 있어서 박쥐를 지구 상에서 제거한다는 것 자체를 상상할 수도 없다. 지금껏 신종 바이러스의 출현을 예측한 적이 없듯, 앞으로도 어떤 바이러스가 출현하여 인류를 긴장시킬지 예측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하늘만이 알 것이다.

야생에서 잠자는 바이러스를 깨우지 마라.

인간이 야생 생태계를 최대한 건드리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