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시&풀, 신종 전염병의 계속되는 출현

2020. 4. 26. 11:15바이러스

신종 바이러스가 출현하기 위해서는 전제 조건이 있다.

자연 숙주라고 불리는 동물 집단 내에서 그 바이러스가 효율적으로 유지되고 있어야 가능하다. 자연 숙주 집단 내 바이러스가 지속적으로 유행하기 위해서는 감염 개체가 최소한 다른 한 개체 이상의 개체를 감염시켜야 바이러스 유행의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다. 한 개체가 감염시킬 수 있는 평균 개체 수를 뜻하는 전문 역학 용어로 이것을 '기본 감염 재생 지수'라고 한다. 기본 감염 재생 지수가 높을수록 전염력은 강하게 나타나며, 반대로 낮을수록 바이러스 전염이 급격히 떨어진다.

 

바이러스 유행이 지속적으로 유지되려면 일단 그 집단 내 개체수가 충분히 존재하고, 숙주 개체가 서로 빈번한 접촉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전염성이 강한 홍역 바이러스를 예로 들어보자.

홍역 바이러스가 인간 집단 내에서 매년 발생하려면 최소 25만~50만 명의 인구를 유지해야 한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동물 세계에서 특정 바이러스가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으려면 대규모로 집단 서식하는 동물 집단이 유리할 수 있다. 동굴에 서식하는 수백만 마리의 박쥐 집단에서 유지되는 광견병 바이러스와, 수십만~수백만 마리가 떼 지어 다니는 야생오리류 사이에서 순환하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그러하다. 또 집단 사육하는 가축 사이에 유지되는 각종 가축 바이러스들은 이러한 환경 속에서 바이러스가 유지되는 집단성이 작용한다.

 

대부분의 바이러스들은 고유한 자연 숙주의 틀 속에서 서식하고 있다. 그러나 동물 바이러스가 자연 숙주 동물에서 다른 숙주 동물 종으로 전이될 수도 있다. 이것을 우리는 '스필오버(Spillover)' 라고 말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바이러스가 기존의 숙주 영역 범위를 벗어나 새로운 동물 종으로 스필 오버하는 것은 거의 일어나기 힘든 사건이다. 종간 장벽이라는 커다란 장애물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키우고 있는 반려견이 혹시 개 홍역에 걸리더라도 주인이 그 병에 걸리지 않는 것이 그 때문이다. 특정 바이러스가 종간 장벽을 뛰어넘어 스필오버가 발생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 개연성과 전염 조건이 나타날 수 있는 효율성 간 절묘한 접점이 맞아떨어져야 한다.

 

스필오버가 나타나기 위해서는 자연 숙주와 새로운 숙주 간의 빈번한 접촉이 존재해야 그 개연성이 높아질 수 있다. 우연히 한 두번 접촉했다 해서 쉽게 바이러스가 넘어오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접촉할 기회가 많을수록, 보다 긴밀하게 직접적으로 접촉할수록 스필오버의 티켓을 쥐어 잡을 확률이 올라간다. 또한 스필오버의 기회는 그 동물 종에서 감염될 수 있도록 바이러스가 구조적 변화(변이)를 일으킬 때 제공된다.

 

중국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의 경우에도 그러한 흔적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다. 2020년 1월 펭 조우 등 중국 과학자들이 밝혀낸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유전자 정보에 의하면, 유전자 일부(특히 Orf3 b)가 박쥐 바이러스뿐만 아니라 그 어떤 바이러와도 일치하지 않았다. 사스 바이러스처럼 사람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제3의 바이러스와 뒤섞임이 일어났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그 유전자를 어떻게 획득했는지는 바이러스 출현 경로를 찾아내고, 그 경로를 차단하고자 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것이다. (제3의 바이러스를 가진) 중간 매개 동물이 무슨 동물종인지 그것을 밝혀내야 하는 것이 과학자들에게 숙제로 남겨졌다. 뱀이나 밍크 등이 그러한 중간 매개 동물로 거론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확정적인 단서라기보다는 그저 추정에 불과하다. 아마도 그 중간 매개 동물은 사람과 자주 접촉하는 어떤 표유 동물일 가능성이 크다. 과학자들이 밝혀내야 할 숙제다.

 

이러한 신종 바이러스 출현에는 새로운 숙주 집단이 자연숙주 집단 서식환경에 접근할 수 있는 효율성과 용이성이 작동한다. 미지의 바이러스가 새로운 동물 종에 대한 접근성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환경적 변화가 일어나야 가능하다. 특히 푸시&풀 여건이 작동되는 환경적 변화는 새로운 숙주 집단, 특히 인간 집단으로의 접근성과 용이성을 극적으로 변화시킨다.

 

인간 역사에 있어 인간 집단의 밀집도가 급증하던 두 번의 시기에 신종 전염병 출현을 위한 푸시&풀 여건이 크게 작동하였다.

첫 번째 시기에는 야생동물을 가축화하는 중 오늘날 상당수의 사람 바이러스들이 이 가축화 단계의 동물로부터 전이되어 넘어왔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소에서 넘어온 홍역 바이러스다.

두 번째 시기인 현대 문명 시대의 신종 바이러스는 그동안 상대적으로 접촉이 없었던 숲 속 야생동물에서 가축 등 주변 동물을 거쳐 인간으로 넘어왔다. 사스 바이러스, 메르스 바이러스, 니파 바이러스, 신종플루 바이러스 등 오늘날 출현하는 신종 바이러스들이 그런 사례들이다.

 

푸시(Push) 여건은 특정 지역에 인구 집단이 그 이전에 비해 과도하게 증가하면서 작동한다. 예를 들어 인간 집단의 증가가 시작되면 그로 인해 생활터전 공간과 식량 자원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이것은 그 지역에 사는 다른 동물의 서식지 영역을 크게 훼손하게 만들고, 필연적으로 시식지에서 쫓겨난 동물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새로운 서식지(사람 생활공간을 포함)를 찾아 침범할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사례가 아프리카에서 나타난 에볼라 바이러스, 에이즈 바이러스 등이다.

 

풀(Pull) 여건은 인구 밀집이 가속화됨에 따라 엄청난 농축산물의 대량 생산이 일어나면서 작동한다. 대량의 농축산물이 생산되는 농경지나 과수원은 특히 자연재해나 벌목 등으로 인해 먹이부족으로 허덕이는 야생동물이 사람들의 생활터전을 침범하여 곡식과 과일을 침탈하게 만든다. 가뭄과 산불로 보루네오에서 쫓겨난 과일박쥐가 말레이시아 양돈장 내 과수원을 습격하면서 인부들 사이에서 출현한 니파 바이러스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러면 2019년 중국 우한에서 출현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에서도 푸시&풀 원리가 작동 했을까?

그러할 것으로 본다. 일단 박쥐가 범인이 분명하다고 전제하고 설명해 보자.

우리는 그럴듯한 과정을 상상할 수 있다.

인간이 돈벌이를 위해서 야생 동굴에 서식하는 박쥐들을 마구 포획해 왔을 것이다. 그리고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를 가진 박쥐가 운이 없게도 사람들의 손에 들어왔을 것이다. 그 박쥐 바이러스는 박쥐를 잡아서 재래시장 한 편에 가두고 있는 동안 다른 포유동물과 접촉할 기회가 충분히 주어졌을 것이고, 또는 박쥐고기를 팔기 위해 도축하는 과정에서 시장 상인이나 구매자 등과 긴밀하게 접촉했을 것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박쥐 바이러스는 사람에게 넘어올 수 있는 티켓을 부여잡았을 것이다. 이러한 상상이 맞다면, 그것은 인간 스스로 강제적인 푸시&풀 조건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야생 박쥐를 포획하지 않았다면, 신종 바이러스 출현 사태 자체가 생기지도 않을 것이다. 야생 박쥐가 스스로 돌아다니면서 마구 뿌리고 다니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앞으로도 박쥐가 신종 전염병 출현 주범 역할을 계속 이어갈까?

자연계에서의 박쥐를 제거할 수 있을까?

그 답은 박쥐가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