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된 감염자

2020. 4. 26. 01:45바이러스

메르스 감염자는 누구든지 다른 사람에게 메르스를 옮길까? 그렇지 않다.

특정 집단 내 전염병이 발생하면 감염자 누구나 다른 사람을 감염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실상은 모든 감염자가 동일한 전파력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감염자의 접촉으로 인한 2차 감염자는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차단하는 엄격한 격리 통제까지 받게 된다. 그래서 다수의 감염자는 다른 사람에게 2차 감염을 거의 일으키지 않는다. 2003년 싱가포르에서의 사스 사례들을 예로 들면, 사스 감염자의 81%는 다른 사람을 감염시킨 사례가 없었다.

 

소수의 슈퍼 전파자가 다수의 사람들에게 바이러스를 감염시켜 전염병을 확산시킨다. 1997년 옥스퍼드대학 울 하우스는 과거 전염병의 전파율 측정 통계를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많은 전염병 발생에서 특정 집단 내 소수의 감염 환자 20%가 전체 감염 환자 80%에게 감염시킨다는 20/80 경험법칙이 존재한다고 발표했다. 실제 2003년 홍콩과 싱가포르 두 도시에서 발생한 사스 사례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단 7명의 슈퍼 전파자가 전체 감염자 중 4분의 3을 감염시켰다. 심지어 대부분의 감염자는 다른 사람을 감염시킬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왜 소수의 슈퍼전파자가슈퍼 전파자가 존재할까? 사스나 메르스의 경우, 감염자는 잠복기(병증을 나타내지 않은 초기 감염기간) 동안에는 바이러스를 배출하지 않는다. 즉, 잠복기 상태의 감염자는 다른 사람과 접촉하더라도 2차 감염을 일으킬 가능성이 거의 없다. 잠복기가 지나고 고열, 통증, 심지어 호흡곤란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병증이 나타나는 기간에 바이러스는 몸 밖으로 배출된다. 이때 다른 사람을 감염시킬 수 있는 위험성이 높아진다. 그래서 독감 증상이 나타날 때 격리조치 등을 취하지 않고 방치될수록 병증은 악화되고 감염자는 보다 많은 바이러스를 배출할 것이다. 검역과 통제조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수록 감염자는 슈퍼 전파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홍콩과 싱가포르의 사스 유행의 경우, 다른 감염자와 달리 슈퍼 전파자는 병증이 나타나고도 4일 이상 격리조치 없이 방치된 상태에 놓여있던 감염자들이었다.

 

슈퍼 전파자를 어떻게 통제할까?

결론적으로 한 명의 감염자라도 방치하지 않는 것! 잠재적 슈퍼 전파자를 조기에 찾아내고 신속하게 통제하는 것, 그것이 전염병 확산을 막는 핵심 방법이다. 제2의 사스, 제2의 메르스가 발생하더라도 전염병 확산을 통제하는 방법의 핵심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울 하우스의 20/80 경험법칙처럼, 슈퍼 전파자 통제에 성공한다면 전체 감염자의 방생 수를 80% 줄일 수 있다.

 

퍼즐 맞추기

2004년 사스바이러스가 어디에서 유래했는지 제대로 밝히지 못한 채 사스 유행은 멈췄다. 그 후 사스가 어디에서 어떻게 출현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역학조사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향후 사스의 재출현을 막기 위한 예방조치를 취하는 데 있어서 그 근원지를 찾아내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스가 처음 발생한 곳은 2002년 11월 말에 중국 남부 광둥성 광저우시의 한 재래시장이었다. 중국에 있는 다른 재래시장과 마찬가지로, 그 그 재래시장에서도 겨울 진미 요리로 각광을 받고 있는 수백 종의 각종 야생동물을 팔고 있었다.

사스 출현의 원인을 밝히기 위하여 그 재래시장에 대해 집중적인 조사가 이루어졌다. 그 재래시장에서 야채를 파는 상인들 중에 사스에 걸린 사람은 없었지만 동물과 동물고기 취급상인, 식육식당 종사자들 상당수가 아무런 증상도 없이 사스에 걸려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심지어 사향고양이와 너구리에게서 사스 바이러스가 검출되었다. 최소한 그 재래시장에서 팔고 있는 사향고양이나 너구리 같은 소형동물이 사람에게 사스를 옮기는 연결고리를 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아마도 이들 야생동물과 빈번하게 접촉하는 과정에서 시장 상인들이 사스 바이러스에 노출된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그러나 재래시장에서 사향 고양이를 공급하는 농장과 야생 사향고양이는 사스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례가 발견되지 않았다. 이것은 사향고양이가 원래 사스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던 것이 아니라 재래시장에서 사스에 걸려 사람에게 옮겼다는 것을 의미했다.

 

"사스 바이러스가 분명 야생동물에서 기원했을 텐데, 아무래도 박쥐가 의심스럽다."

 

2004년 사스 바이러스의 기원을 조사하고 있던 호주 동물보건연구소 린 왕은 박쥐에 베팅을 걸었다. 그는 호주 과학자 흄 필드와 함께 1994년과 1998년 호주와 말레이시아에서 출현한 핸드라 바이러스와 니파 바이러스의 자연 숙주 동물이 과일박쥐임을 밝혀낸 베테랑 과학자였다. 그뿐 아니라 화교 출신 린 왕은 중국 사람들이 한방 재료뿐만 아니라 식용으로 박쥐고기를 즐겨먹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린 왕의 예감은 적중했다. 중국 남부 지역에 서식하는 박쥐들을 조사하던 중 광시성 난닝에서 3종의 중국관박쥐로부터 사스 바이러스와 유사한 코로나 바이러스를 검출했다. 이 엄청난 결과는 미국과학진흥협회 주간 과학전문 저널 <사이언스> 2005년 10월 28일 자에 발표되었다. 비슷한 시점에 홍콩대학 수산나 라우도 유사한 조사 결과를 미국 국립보건 원보에 발표했다. 중국 관박쥐에 대한 후속 조사들도 중국 관박쥐가 사스 출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뒷받침했다. 이 결과는 사스의 재출현을 막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었다. 그것은 박쥐와 가축, 사람 간 접촉할 수 있는 연결고리를 끊어주는 조치였다.

사스 바이러스가 박쥐 바이러스에서 유래했다고 단정 짓기에는 뭔가가 부족해 보였다. 그 박쥐 바이러스의 ORF8 유전자 부위가 사람과 사향고양이에게서 분리된 사스바이러스와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박쥐 바이러스는 사람 세포에서 증식하지도 않았다. 박쥐에서 사향고양이를 거쳐 사람으로 바이러스가 직접 넘어왔다고 보기가 어려워졌고 그것은 결국 증명되지 않았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15년, 홍콩대학 수산나라우는 이 미스터리를 풀 수 있는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그녀는 중국 위난성에 서식하는 박쥐를 대상으로 조사하고 있었다. 그녀는 기적같이 또 다른 관박쥐종에게서 숨겨진 열쇠고리, 즉 사스 바이러스 ORF8 유전자를 가진 제2 박쥐 바이러스를 발견했다. 그 박쥐가 사는 동굴에는 여러 종의 박쥐들이 무리 지어 살고 있었다. 여러 박쥐 종이 가지고 있는 바이러스들이 서로 넘나들면서 각각의 다른 코로나 바이러스가 뒤섞여 잡종 바이러스를 만들어낼 수 있는 여건을 가지고 있음을 시사했다. 수산나 라우는 그 과정에서 박쥐의 몸속에서 두 박쥐 바이러스가 뒤섞여 새로운 잡종 바이러스들이 만들어졌는데, 그중 하나가 사스 바이러스로 사향고양이와 사람으로 넘어왔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미스터리의 퍼즐은 어느 정도 맞춰졌다. 중국 남부 지역에서 수많은 박쥐 코로나 바이러스가 지금도 지속적으로 분리되고 있다. 이 박쥐 바이러스들 중 사람에게 감염성을 획득한 바이러스가 존재할 수도 있으며,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바이러스 뒤섞임 과정을 거쳐 사람에게 넘어올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 

 

제2의 사스 바이러스가 언제 출현할까?

우리는 무엇을 주시해야 할까?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