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그림자

2020. 6. 12. 15:10바이러스

 "D여대가 아프리카 아이들을 초대한다."

 서아프리카에서 공포의 에볼라가 한참 창궐하고 있던 2014년 8월 초, D여대 한 여학생이 인터넷 포털 사이트 카페에 유언비어성 글을 올렸다. 그 대학이 추진하는 유엔 여성 글로벌 파트너십 세계대회 행사에 에볼라가 창궐하고 있는 아프리카 참가자들이 참여한다고 해서 이를 저지해야 한다는 논지였다. 이 내용은 인터넷을 통해 일파만파로 급속히 퍼졌고 인터넷 각 포털 사이트마다 '서울 D여대'가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마치 아프리카 참가자들이 그 대회 참가를 위해 한국에 입국하면 에볼라가 확산되어 끔찍한 참사라도 벌어질 듯, 인터넷에서는 '당장 아프리카인들의 입국을 취소해야 한다', '살고 싶다' 등 난리가 났다. D여대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고, 수만 명이 개최 취소 서명운동까지 벌였다. 심지어 국내 거주하는 아프리카인들에게까지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2014년, 서아프리카 기니에서 발생한 에볼라가 시에라리온, 라이베리아 등 인국 국가로 거침없이 퍼져 나가 유행 확산이 판데믹의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했을 때, 국제기구와 세계 각국은 에볼라가 판데믹으로 발전할지 우려의 시선으로 서아프리카 지역을 주시했다. 그 기간 동안, 많은 나라들은 비행기 운행을 중단하거나 자국민의 서아프리카 지역 여행 자제령을 내렸다. 매우 다행스럽게도 에볼라는 여전히 서아프리카 지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에볼라 바이러스가 높은 치명성을 가지고 있어 공포가 증폭됐지만, 감염자의 신체에서 흘러나온 체액 등과의 접촉에 의해서 전염이 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감염자나 감염자 체액이 묻은 물건과 접촉하지 않는 한, 치명적인 에볼라에 걸릴 위험성이 매우 낮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바이러스는 제대로 된 환자 통제와 국경 검역만으로도 지역 사회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러한 바이러스의 성질이 바뀌지 않는 한, 즉 치명 정성은 낮추되 전염성은 높아지는 방향으로 급변하지 않는 한, 판데믹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일부 학자들은 케냐 나이로비 공항 같은 국제 허브공항까지 확산되는 것을 저지한 것도 에볼라의 국제적 확산을 막는 데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21세기 들어서, 신종 바이러스가 출현하여 유행함으로써 판데믹으로 발전할지 모른다고 우려했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2002년 중국 광둥성에 출현한 사스가 그러한 대표적인 사례였다. 2003년 봄, 사스는 홍콩발 비행기를 통해 순식간에 세계 38개국에 확산되어 지역사회 유행 상황으로 몰고 갔지만, 세계보건기구는 끝까지 판데믹을 선언하지 않았다. 사스는 치사율이 거의 10%에 육박할 만큼 치명적인 바이러스였고 단 몇 개월 소용돌이치듯 전 세계를 휘몰아쳤지만, 각국 보건당국의 강력한 통제조치로 찻잔 속의 태풍처럼 잦아들었다. 만약 발생 국가에서 지역사회 내 바이러스의 유행을 효과적으로 통제하지 못했더라면, 아마도 세계 보건기구는 '판데믹' 카드를 꺼내 들었을지도 모른다.

 유사한 사례는 메르스에서도 재현되었다. 2012년 중동 지역에서 처음 출현한 이후 지역사회 내 메르스 유행은 중동지역을 벗어나지 못했다. 중동 이외 지역에서의 대규모 메르스 유행은 2015년  한국이 유일했다. 그 당시 한국발 제2 사스 유행을 우려하는 시각으로 세계는 한국을 주시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메르스는 우리나라 보건당국에 의해 두 달이 지나지 않아 통제되었고, 세계 여러 나라로 급속히 확산되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사스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낮은 사람 간 전염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스 바이러스와 달리, 중동지역에서 메르스는 여전히 유행하고 있으며 제대로 통제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이기는 하지만, 어느 순간 이 바이러스에 '돌연변이'라는 돌발변수가 발생해서 사람에게 확실하게 적응된, 그래서 신종플루와 같은 전염력을 획득한다면 '판데믹'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로까지 진행될 수 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아마도 사람 간 전염력은 증가하되, 치사율은 지금보다도 훨씬 낮아지는 방향으로 바이러스가 변해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반적으로 신종 전염병의 경우, 전염병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전염력과 숙주 치사율은 서로 양립하기 힘들다. 영화에서나 가능한 시나리오이다. 신종 바이러스가 '전염력'이라는 무기를 획득하여 판데믹으로 진행하려면 높은 숙주 치사율이라는 카드를 버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