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주인공의 등장, HIV

2020. 6. 1. 21:54바이러스

1981년 6월 5일, 미국 질병통제센터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CDC가 발행하는 보건 주간지에 한 이례적인 면역결핍 환자를 소개하는 사례 논문이 게재되었다. 이 환자들은 1980년 10월부터 1981년 5월까지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지역 3개 병원에서 입원한 29~36세의 여러 건장한 남자들로서, 건강한 사람에게는 거의 발병하지 않는 폐포자충 폐렴 Pneumocystits carinii pneumonia 환자들이었다. 이 폐렴은 일반 폐렴과 달리, 면역 기능이 심하게 손상된 환자에게 발생할 수 있는 흔하지 않은 폐렴이라 여러 건장한 남자들 사이에서 연이어 발생한 것 자체가 매우 이례적인 것이었다. 이 환자들의 공통점은 남성 동성애자라는 것이었고, 건장한 사람에게는 잘 걸리지 않는 사이토메갈로 바이러스 폐렴과 캔디다 진균증과 같은 합병증도 심하게 앓았다는 것이다. 바로 이 논문이 전 세계에 후천성 면역결핍증 환자의 발생을 세상에 알린 역사적인 논문이 되었다. 당시 사례를 보고한 의사들은 환자들의 면역기능 장애가 발생한 사례라고 지적했다. 비슷한 시기에 미국 뉴욕과 캘리포니아 남성 동성애자들 사이에서 또 다른 면역결핍 사례가 보고되었다. 1981년 말까지 미국에서 면역결핍 환자 사례들이 급증하여 270건이 발생하였고 그중 121명이 사망했다. 면역세포인 T세포를 심하게 파괴시키는 새로운 괴질이 출현하여 확산되고 있음이 분명했다. 1982년 미국 질병통제센터는 이 괴질을 후천성 면역결핍증, '에이즈'라고 명명했다. 에이즈는 감염자의 혈액이나 체액이 들어있는 바이러스가 상처를 유발하는 성관계, 수혈이나 오염된 주사기 사용 등을 통해 몸 안으로 침투하면서 감염된다. 일단 에이즈에 감염되면 체중이 감소하고 마른기침, 만성 설사, 만성 기침, 피로감 호소 등을 일시적으로 보인다. 그 후 독감 비슷한 증상은 사라지고, 잠복 상태에서 사람 혈액에 존재하는 면역세포인 T세포를 서서히 파괴시킨다. 감염 후 6개월에서 최대 15년에 걸쳐 잠복 감염이 있은 후, 면역 능력이 고갈된 상태에서 감염자에게 병증이 나타난다. 이로 인해 건강한 사람에게는 문제 되지 않는 각종 기회감염균에 의한 질병이 쉽게 일어난다. 헤르페스 바이러스 8형에 의한 카포시육종, 파필로마 바이러스에 의한 자궁경부암 등 발암 바이러스로 인해 희귀 암 발생도 쉽게 나타난다.

 1983년에 드디어 에이즈를 일으키는 범인이 밝혀졌다. 범인을 밝힌 주인공은 프랑스 파스퇴르연구소에 근무하는 뤼크 몽타니에 Luc Montagnier 박사였다. 그는 그 공로로 2008년 노벨상을 받았다. 범인은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바이러스였다. 에이즈를 일으키는 이 바이러스는 레트로 바이러스인 인간면역결핍 바이러스 Human Imunodeficiency virus, HIV 1형이었다. 이 바이러스가 언제, 어떻게 인류에게 확산되었을까? 바이러스 기원 및 확산에 대한 미스터리가 1999년 이후 서서히 하나씩 풀리기 시작했다. HIV는 원래 아프리카 열대우림 영장류들 특히 침팬지가 가지고 있던 바이러스였다. 그랬던 바이러스가 이들 동물과의 알 수 없는 어떤 접촉 과정을 거쳐 사람에게로 넘어온 신종 바이러스로 밝혀졌다. 과학자들은 이 바이러스가 언제 사람에게 넘어왔는지를 밝히기 위하여, 병원에 보관된 혈액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1959년 아프리카 콩고 지역의 한 남성으로부터 채혈한 보관 혈액에서 에이즈 바이러스가 검출되었다. 최소한 1959년 이전에 이미 인간으로 이 바이러스가 넘어온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HIV가 인류에게 처음 출현한 것은 아마도 1920년대 콩고민주공화국 킨샤사 지역이라는 것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에볼라가 처음 출현한 곳도 콩고 민주공화국 킨샤사 지역 근처이다. 19세기 말, 아프리카는 유럽의 식민지 개척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1890년대부터 밀림 개척, 광산 개발, 벌목 등을 위하여 킨샤사에서 중앙아프리카 열대 밀림 깊숙한 곳까지 증기선 운항이 시작되었다. 열대우림 밀림 지역에 철도와 각종 도로가 건설되면서 원주민들과 외부인들의 교류가 시작되고, 마을과 마을 간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인부들이 대거 동원되면서, 인부들을 위한 고기 수요가 증가하여 야생동물을 사냥해서 파는 부시 미트 Bush Meat가 성행하였다. 사냥이나 도축 등의 과정을 통해 침팬지에게서 사람으로 우연히 전염이 되었을 것으로 보는 설이 유력하다. 이와 같이, HIV의 출현은 에볼라와 유사한 과정을 거쳐 인간에게 모습을 드러낸 것으로 추정된다. HIV 보균자로부터 감염될 생각보다 높지는 않지만, 무서운 점은 병증이 없는 잠복기 동안에도 HIV는 혈액에서 지속적으로 증식되고 있어서 다른 사람에게 옮길 수 있다는 점이다. 10년 이내 장기간의 에이즈 잠복기, 잠복기 동안 전염 가능, 1980년대 초 최초의 환자가 발생했다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아마도 1970년대에 바이러스를 실은 트로이 목마는 아프리카에서 세계 각국으로 부지불식간에 조용히 은밀하게 퍼져 나갔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다음  글에 이어서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