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5. 31. 20:09ㆍ바이러스
지금은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해방 전에 태어난 부모님 세대에서는 실제 태어난 날과 호적상 생일이 다른 경우가 많았다.
그 당시는 가난으로 인한 굶주림과 위생환경 불량 등으로 인해 각종 전염병 창궐로 신생아 사망률이 높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태어난 아이가 어느 정도 기일이 지나서도 살아있으면 호적에 올리던 풍습이 존재했다.
운이 좋게도 오늘날을 사는 우리는, 과거 어느 세대보다도 상대적으로 치명적인 전염병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한 세상에 살고 있다. 과학과 의학의 눈부신 발전으로 치명적인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한 각종 예방 백신과 치료제들이 즐비하다.
과거에 비해 풍족한 생활, 개선된 위생환경 그리고 발달한 의료기술로 오늘날 우리나라에서의 유아 사망률은 매우 낮아 유아 1,000명당 약 3명에 불과하다. 기아와 빈곤 그리고 전염병 창궐로 몸살을 앓고 있는 아프리카 국가의 대부분은 우리나라보다 유아 사망률이 최소 10배 이상 높다. 지금도 아프리카에서는 유아 사망률이 1,000명당 50명이 넘는다. 우리보다 생활환경이 열악한 이웃 중국의 경우에도 유아 사망률이 2014년 기준 1,000명당 9명으로 우리나라보다 약 3배나 높다.
오늘 날,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전염병 감염으로 인해 태어난 아이에게 혹시 큰 문제가 생길까 걱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태어난 아이는 생후 다양한 전염병 감염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각종 예방 백신 주사를 맞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100일 잔치란 생후 100일이 경과할 때까지 무사히 살아남은 아이를 축복하기 위하여 부모가 아이를 위해 베푸는, 건강하게 자란 아이를 위한 생애 최초의 잔치였다. 그 의미를 부여한다면, 오늘날 우리가 아이들을 위해 베푸는 100일 잔치는 약간 멋쩍은 감이 없지 않다.
과거 우리 조상들에게 가장 공포스러운 대상은 전쟁과 호환 그리고 '마마'라 불리는 전염병 창궐이었다. 마마 귀신은 우리 조상들이 가장 두려워 했던 전염병, 천연두였다. 천연두는 기원후 6세기경, 마한시대에 한반도에 유입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을 만큼,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전염병이 아닐까 싶다. 당시 치사율이 30%에 달하는 공포의 전염병, 천연두는 특히 어린아이에게는 둘 중 한 명은 살아남지 못하는 매우 치명적인 전염병이었다. 천연두에 걸렸다가 살아남더라도 얼굴에 심한 흉터가 남는 등 그 후유증은 실로 끔찍했다. 신라 '처용가'에서 처용이 제발 물러나라고 노래를 불렀다는 역신이 '천연두'라는 설이 유력하다. 우리가 역사 드라마에서 접하는, 마을에 전염병이 창궐하여 시신을 매장하고 집을 불태우는 장면도 아마도 천연두로 인한 참상을 그린 것일 것이다. 먼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불과 60여 년 전, 한국전쟁 기간 중에도 4만 명 정도가 천연두에 걸렸던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다행히도 천연두 박멸 사업으로 1960년에 발생한 3명의 천연두 환자를 마짖막으로 우리나라에서 천연두는 자취를 감추었다. 1980년 5월 8일, 세계 보건기구는 전 세계적으로 천연두가 완전히 퇴치되었다는 역사적인 박멸 선언을 했다. 천연두는 인류의 의지와 노력에 의해 지구 상에서 완전히 퇴치된 최초의 바이러스 전염병이다. 천연두, 이제는 과거의 일이다.
흥미롭게도 인류의 의지에 의해 지구상에서 완전히 박멸된 전염병 중 가축 바이러스도 있다. 수의학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 독자들은 들어본 적도 없는 소의 전염병, 우역이다. 우역은 전염이 쉽게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일단 감염된 소는 살아남지 못할 정도로 매우 치명적인 가축전염병이다. 가축의 전염병 중에서는 가장 공포스러운 전염병이다. 사실 우역의 창궐로 인해 20세기 중반까지 아프리카에서만 수천만 마리의 소가 우역에 걸려 떼죽음을 당했다. 우역의 창궐은 단순히 소의 전염병 차원이 아니라, 식량 자원 공급에 심각한 문제가 되는 국제적 식량 안보 이슈로서 부각되었다. 심지어 20세기에 유럽에서도 우역이 확산되면서 국제 공조와 협력으로 전염병 확산을 통제하기 위하여, 1924년 프랑스 파리에서 창설한 조직이 바로 세계 동물보건기구였다. 사실 조선시대 한반도도 우역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1870년대 만주 지역을 경유해서 한반도에 유입된 것으로 추정되며, 특히 지금의 한반도 북한 지역인 북부에서는, 마을의 소들을 떼죽음으로 몰아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래서 몇 년 간격으로 우역이 유행하기 시작하면 집안 경제의 기둥이던 소를 잃는 농민들이 속출하면서 그 지역 민심이 흉흉해질 정도였다. 우리나라에서 우역은 1931년 근절되었다. 그렇게 농민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우역도 천연두 뒤를 이어 2011년 5월 공식적으로 전 세계적인 박멸이 선언되었다.
인간의 의지에 의해 사라진 천연두와 우역 바이러스가 마지막으로 사람과 가축에게 발병한 곳은 모두 아이러니하게도 아프리카 지역이었다. 천연두와 우역을 지구상에서 몰아낼 수 있었던 것은 '예방 백신 집단 접종'이라는 인간의 무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우리나라에서 작은마마라 불렸던 '홍역'도 대대적인 예방백신 접종의 노력으로 2006년 11월 홍역 퇴치 선언(인구 100만 명당 1명 이하)을 하기에 이르렀다. 가축과 소에서 가장 무서웠던 우역에 이어, 양계장에서 가장 무서운 공포의 대상이었던 '뉴캐슬병'도 정부가 지원한 예방백신의 접종으로 2010년 6월 이후로는 더 이상 국내에서 발생하지 않는다.
의학과 과학의 발달로 백신과 항생제, 치료제가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수천 년동안 이어져 내려온 천연두 등 치명적인 바이러스의 공포로부터 해방되었다. 그리고 인류 스스로의 노력으로 치명적인 나머지 나쁜 바이러스들을 지구 상에서 제거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천연두가 사라지기 오래전부터, 이미 새로운 주인공은 천연두를 대체하는 불씨를 서서히 키우고 있었다. 인류가 전혀 낌새를 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은밀하게 그리고 광범위하게, 그것도 천연두가 지구 상에서 마지막 모습을 보였던 아프리카 지역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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