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볼라 바이러스 치사율 60%의 출발은 과일 박쥐였다.

2020. 4. 24. 19:50바이러스

의문의 보온병

 

지금으로부터 약 40년 전 1976년 9월, 벨기에 앤트워프 열대의학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던 27살의 젊은 과학자

피터 피오트는 멀리 자이레(현 콩고민주공화국) 킨샤사로부터 온 의문의 보온병 하나를 받았다.

그 당시 자이레 수도 킨샤사에 파견된 벨기에 의사가 보낸 것이었다.

그 보온병 안에는 혈액 샘플과 함께 '괴질에 걸린 수녀의 혈액'이라 적힌 메모지가 같이 동봉되어 있었다.

피오트는 그의 동료와 함께 실험실에서 배양한 세포를 사용해 바이러스 배양검사를 하고 있었다.

평상 시 일상적으로 하는 것처럼 그는 혈액 샘플을 꺼내 실험실에서 배양하고 있는 원숭이 콩팥세포에 접종했다.

며칠 후 그는 검체를 접종한 세포를 현미경으로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그 세포에서 무언가 바이러스가 증식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무슨 바이러스가 그 세포에서 증식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전자현미경으로 바이러스 입자를 관찰하다가

피오트는 큰 충격에 빠졌다.

그의 눈에 비친 바이러스 입자는 일반적인 바이러스 입자는 일반적인 바이러스 입자 모양과 달리, 지렁이 모양의

기괴한 구조를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녀를 죽음으로 몰아간 이 바이러스가 범상치 않은 치명적인 바이러스 임을 직감했다.

1967년 독일 마르부르크에서 발생한 마르부르크 출혈열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와 매우 흡사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마르부르크 출혈열은 백신 생산에 필수적인 원숭이 콩팥세포를 확보하기 위해, 우간다로부터 수입한 

원숭이와 접촉한 백신공장 종업원을 중심으로 총 31명이 감염되고 7명을 사망하게 만든 충격적인 전염병 사건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피오트는 그 벨기에 출신 수녀가 괴질로 결국 사망했으며, 이어서 그 수녀가 있었던 열대우림

외진 마을에서 고열, 설사, 구토 증상을 보이다가 피를 토하며 사망하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보름 후 피오트와 그의 동료들은 미지의 괴질 바이러스를 퇴치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서둘러 필요한 검사

장비를 꾸렸다.

비행기를 타고 자이레 킨샤사와 붐바를 거쳐 적도 열대우림에 있는 괴질이 발생한 얌부쿠 마을까지 날아갔다.

 

얌부쿠 마을은 콩고 강 최북단 지류인 에볼라 강 근처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죽음의 공포가 드리워진 곳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열대우림으로 둘러싸인 조용하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들이 도착했을 때 벨기에 출신의 가톨릭 신부와 수녀들이 병우너과 학교를 운영하면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었다.

피오트 자신이 검사한 그 수녀를 포함해서 이미 수녀 4명이 괴질에 걸려 사망한 뒤였다.

나머지 생존자들은 죽음을 기다리고 있듯이 괴질의 공포 앞에서 떨고 있었다.

 

피오트와 동료들은 생존 수녀들을 대상으로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조사했다.

수녀들의 진술을 토대로 괴질이 발생한 마을들을 지도에 표시하고 일일이 찾아다니며 그 괴질이 어디서 출현했고

얼마나 발생했으며, 어떻게 전염되는지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조사 과정에서 뜻밖에도 괴질에 걸린 환자들 중 상당수가 젊은 인삼부들이었다는 점과 이 임산부들은 한결같이

얌부쿠 마을에 있는 작은 병원에서 정기검진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이 방문한 지방병원은 너무나 열악해서 위생소독시설이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

주사기는 몇 개에 불과했고, 한 주사기로 여러 명의 환자나 병원 방문자들을 치료하는데 사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괴질이 사망한 임산부들의 장례식에 참석한 가족 친지들을 중심으로 확산되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피오트가 발견한 괴질 바이러스는 지방 병원 임산부를 중심으로 퍼졌고, 환자를 돌보거나 장례식에 참석하면서

감염 환자와의 접촉을 통해서 환산되었다는 게 명확해졌다.

 

괴질에 걸려 신음하고 있는 환자들은 즉시 사람들로부터 격리되도록 조치가 이루어졌고,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이

시신과 접촉하는 관습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

결국 괴질의 확산은 멈추었으나 총 318명의 감영자가 발생했고, 치사율 88%로 이 중 280명이 사망했다.

전염병 역사상 이렇게 치명적인 바이러스는 유사 이래 없었다.

피오트는 이 공포의 괴질을 발생지역강 이름을 따서 '에볼라' 로 명명했다.

 

1976년 자이레에서 출현하기 3개월 전, 자이레 발생 지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열대우림 지역인 남부 수단의 

한 면직공장에서 이미 에볼라가 발생했다.

284명의 감염자가 발생, 151명이 사망하는 등 끔찍한 사건이었다.

이듬해 자이레에서 에볼라로 1명이 사망했고, 1979년에는 남부 수단 면직공장 인부 중 또다시 34명의 감염자가

발생하고 22명이 사망하는 등 공포의 여진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에볼라 바이러스는 아프리카 열대우림 지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머물러 있었다.

그 후 에볼라 바이러스는 홀연히 사라졌다.

하지만 불씨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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