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지역 기원설과 아프리카 기원설

2020. 5. 6. 00:21미스터리

약 70억 명에 이르는 인류는 몇몇 오지를 제외한 지구 전역에서 살고 있다.

현대 인류가 전 세계에 널리 퍼진 이유를 설명해주는 설득력 있는 이론은 아프리카에서 살고 있던 호모 에렉투스가 약 100만 년 전(혹은 150만 년 전)에 아프리카를 탈출해 세계 곳곳에서 각자 특성에 따라 진화했다는 것이다.

즉 현대 인류가 지니고 있는 인종적 특징은 각 지역에서 오랜 세월 적응해온 결과라는 설명이다.

이 말은 현대 인류가 유럽과 동시에 아프리카, 중동에도 존재했다는 뜻으로, 황인종의 조상은 황인종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가령 베이징원인에는 몽골로이드 Mongoloi 계 인종에서만 보이는 형 태락적 특징이 있다는 점에서 베이징원인은 몽골로이드의 선조다. 이를 '다지역 기원설'이라 한다. 다지역 기원설을 한민족에 적용한다면 70만 년 전에도 한반도에 원시인이 살았으며 이들은 유럽인, 즉 크로마뇽인과 조상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유전자 분석이 획기적으로 발전함에 따라 '아프리카 기원설'이 떠오르고 있다. 이 학설은 약 20만 년 전 아프리카에 사는 '이브'라는 한 여성에서 현 인류가 시작됐다고 설명한다. 유전자 분석을 무기로 삼았기 때문에 많은 과학자들이 지지하고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지구에 등장한 크로마뇽인이 세계로 퍼져 나갔다는 사실을 지지해주는 이론이기도 하다. 이 가설대로라면 한국인도 크로마뇽인의 후예 따.

 

1987년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 고슈 알란 윌슨이 세계 각지에 사는 147명의 미토콘드리아를 조사한 결과 현대 인류의 조상은 단 한 명이라고 발표했다. 현대 인류는 20만 년 전에 동아프리카 사바나 지역에서 돌연변이로 발생했고 이 후손이 세계 각 지역으로 이주해 모든 인류의 기원이 됐다는 것이다.

이를 '아프리카 기원설' 또는 '이브 가설'이라고 부른다.

 

논리 설정과 샘플 채택 등에 큰 문제가 있다는 비판도 받았지만 인류의 선조가 겨우 20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살았던 어떤 여자였다는 가설은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무엇보다 지금껏 구축해온 인류의 조상에 관한 지식을 모두 폐기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기원설은 인류가 이브라 불리는 여성 한 명에서 계통수가 두 개로 나뉜 것을 근거로 한다. 한쪽 가지는 아프리카인뿐이었으나 다른 한쪽 가지는 아프리카인을 비롯한 모든 인종을 포함한다. 이것은 현 인류의 선조가 아프리카에서 진화한 뒤 세계 각지에 진출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영국의 인류 유전학자 브라이언 사이키는 <이브의 일곱 딸 듯>이란 책에서 전 세계 인류의 미토콘드리아 DNA 형을 아프리카에서 기원한 L형에서 나뉘어 나온 33개로 분류하고 동양인은 여섯 개 집단으로 나뉜다고 설명했다.

 

유전자 분석법을 사용해 인간의 뿌리를 찾을 수 있는 이유는 유전되는 생물체의 특성이 기본적으로 DNA 염기서열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생명체의 종이 다르면 당연히 염기서열도 달라진다. 사람들은 평균 1,300개 염기서열 중 한 개 비율로 차이가 난다. 생명체 사이의 차이가 크면 클수록 염기서열 차이도 크다. 생명체들이 원시적인 것에서 점차 진화해왔기 때문인데,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변화하려면 유전자들의 복잡성도 커져야 하는 것이다.

 

한 지역에서 인류가 나타나고 다른 지역으로 일부가 이주하면 인류의 발생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유전적 변이는 이주해 사는 사람들의 유전적 변이보다 훨씬 다양해진다. 가령 미국 로스앤젤레스나 일본 오사카, 만주 연변 지역에 사는 우리 동포의 유전적 변이는 서울에 사는 한국인의 유전적 다양성에 훨씬 못 미칠 것이다. 물론 이는 엄격한 의미에서 유전적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한민족의 특성을 기준으로 삼은 비유일 뿐이다.

 

윌슨이 인류의 미토콘드리아 DNA를 분석해보니 미토콘드리아 DNA의 변이는 아프리카 사람들에게서 가장 다양하게 나타났다. 이 결과는 약 20만 년 전 인류가 한 어머니에서 갈라져 나온 것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한국인과 일본인, 티베트인, 몽골인, 에스키모, 아메리카 인디언은 유전적으로나 언어학적으로 한 묶음이고, 중국 남부인, 캄보디아인, 태국인, 인도네시아인, 필리핀인과 함께 묶인다. 즉 북부 중국인과 한국인은 남부 중국인과는 다른 갈래에서 왔다. 아프리카에서 나온 이브의 후예가 머나먼 동양으로 오면서 두 분류로 나뉘는 이유는 동양으로 오는 경로가 두 갈래였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첫째 경로는 과거 인류학에서 '버마 경로'라고 부르던 것으로, 아시아 해안을 따라 동으로 이동하는 길이다. 아프리카 기원설대로라면 중국 땅에 현 인류가 정착한 것은 6만 년에서 7만 년 전이다. 중국에 도달한 사람들과 같은 사람들이 한반도와 일본에도 정착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일본은 1만 2,000년 전까지도 육지로 연결돼 있었으므로 중국에 도착한 사람들이 한국을 거쳐 일본에 정착했다는 게 무리한 추측은 아니다. 물론 일본 토착민인 아이누족은 후기 빙하시대에 배를 타고 건너간 남부 아시아인일 것으로 추정된다.

둘째 경로는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실크로드와 시베리아를 거치는 경로다. 한민족은 대체로 추위를 이겨내기 쉽도록 실눈이 많고 광대뼈가 튀어나왔으며 동그스름한 콧날, 속 쌍꺼풀, 단두형 머리라는 체질적 특징이 있다. 대체로 바이칼 호 근처에서 사는 북부 아시아인들이 약 1만 3,000년 전에 빙하가 녹으면서 몽골 지방을 거쳐 남으로 이동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일본 아사카 의과대학 교수 마쓰모토는 인간의 혈청에 있는 항체 유전자를 연구해 몽골 인종의 기원과 이동 경로를 추적했다. 그는 몽골 인종을 특정 짓는 네 가지 유전자 결합 중에서 몽골 인종의 혈청에 있는 Gmab3 st 유전자에 주목했다.

바이칼 호 북쪽에 사는 뷰리 아트 족은 Gmab3 st 유전자가 100명 중 52명으로 가장 많았고 한국인은 41명, 일본 본토인은 45명인 데 견줘 중국인은 화베이 지방이 26명, 화난 지방은 9명으로 급격히 감소했다. 반면에 북극 지방에 사는 에스키모는 44명이나 몽골 인종의 특징을 보여줬다. 이 연구 결과는 시베리아로부터 남쪽으로 멀어질수록 Gmab3 st 유전자가 있는 사람 수도 줄어든다는 사실을 보여주므로 몽골 인종이 시베리아에서 기원했음을 증명한다는 설명이다.

 

아프리카 기원설이 맞다면 인종은 언제 갈라졌을까?

1986년 마쓰나가는 두 가지 미토콘드리아 DNA 클로스터가 있는 일본인의 유전형 분포 패턴(20퍼센트와 80퍼센트)을 연구해 약 12만 년 전에 가지가 나뉘었다고 발표했다. 이들을 근거로 하면 이브에서 기원한 남, 북 아시아인은 아주 초기에 나뉘었다가 한 핏줄로 만났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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