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이크 바이러스

2020. 5. 5. 23:46바이러스

바이러스의 발견, 그것은 우열일까? 아니면 필연일까?

인류 역사에서 바이러스가 사회집단의 안전까지 위협하던 일이 비일비재했지만, 그것이 바이러스란 존재에 의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나노 입자 같은 물질이 인간의 생존을 위협할 것이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120여 년 전, 그때서야 과학자들은 세균이 아닌 제3의 미지의 물질, 즉 무언가 전염성을 가지는 물질이 존재하여 전염병이 유행할 수 있다는 인식을 하게 되었다.

담뱃잎에 반점이 생겼다가 결국에는 말라비틀어지게 하여 쓸모없게 만드는 담배 모자이크 바이러스 Tobacco mosaic virus가 그러한 인식의 시초를 제공했다.

"처음 발견한 바이러스가 사람 바이러스가 아니고, 왜 하필 담배 바이러스였을까?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았던 담배에 대한 바이러스가 최초의 연구대상이라는 게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담배가 몸에 해로운 것도 있지만, 학생들이 피워서는 안 되는 금지 대상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도 한몫했던 것 같다. 그 당시 사고체계로는 사람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중요한 바이러스가 최초의 연구 대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사람에게 치명적인 전염병들이 설마 그러한 제3 물질인 바이러스에 의해 발병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그 작은 입자는 상상하지도, 상상한다 해도 장비가 없어서 입증할 수 없는 존재였으니까.

 

사람 바이러스 중 처음으로 발견된 것은 흥미롭게도 천연두가 아닌, 모기가 매개하는 황열 바이러스였다. 어쩌면 학자들이 단지 지적 호기심만 가지고, 그 위험한 천연두 검체를 감히 만질 엄두도 못 냈는지 모른다. 황열은 지금도 매년 20만 명이 걸리고 3만 명이 사망하는 아프리카 열대 풍토병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발생하지 않아 낯선 바이러스이다. 그러나 이 전염병은 유럽 국가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개척할 당시, 아프리카에서 출발한 노예선을 타고 아메리카로 유입되었다. 그리고 18세기 이후 아메리카 열대지역에 창궐하여, 당시 아메리카 개척 유럽인들에게 치사율이 28%에 달하는 공포의 전염병이었다. 특히 1880년대 파나마 운하 건설을 추진하던 당시 2만여 명의 인부가 황열로 사망하여 건설회사가 파산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북미 지역 영토 확장의 최대 장애물로 부각된 황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미합중국의 안정적 건설에 방해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한 미국 정부가 황열 연구와 예 빵 기술 개발을 국가적 과제로 추진한 결과, 1901년 월터 리드 Walter Reed 박사팀에 의해 황열 바이러스의 존재가 밝혀지게 되었다. 이어, 1937년 남아프리카 태생 미국인 막스 타일러 Max theiler는 황열 백신을 개발하여 공급함으로써, 북중미 대륙에서의 황열 피해를 획기적으로 예방한 공로를 인정받아 1951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기도 하였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어떻게 담배 모자이크가 바이러스가 인간이 발견한 바이러스의 첫 주인공이 되었을까?

15세기 말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할 당시, 아메리카 인디언 원주민들은 담뱃잎을 말아 피우면 그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 신의 은총을 받는다고 여겨 종교의식용으로 사용하였다. 또 담뱃잎에서 나온 즙이나 잎을 말린 가루를 각종 치료제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콜럼버스는 귀국하는 길에 인디언으로부터 선물 받은 담배를 처음으로 유럽에 소개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 이후 담배는 스페인과 포르투갈 선원들에 의해 아메리카 대륙으로부터 유럽으로 처음 수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스페인 의학자들에 의해 담배가 의학적 효능이 있는 것으로 발표되면서, 유럽 사회에 급속히 퍼져 통증 치료용으로 각광을 받았다. 담배 수요가 늘어나면서 유럽에서 담배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담배가 두통 치료제뿐만 아니라 희귀한 기호품으로서 유럽 왕실, 귀족, 신흥재벌 등 사회지도층 사이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다. 특히 16세기 들어서면서 영국 왕실히 세수 확보 차원에서 담배를 전매하기 시작했고, 나머지 유럽 국가의 왕실에서도 담배를 전매하기 시작했다.

19세기 말, 담배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고 담배회사들이 생겨나면서 담배 가격이 낮아지자, 유럽과 미국에서 흡연율이 급속히 증가하기 시작했다. 담배 수요가 늘면서 담배 전매 산업은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주요 세수를 확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세기 들어서면서, 담배를 재배하는 농가들이 늘어났지만 농장에서 담뱃잎에 얼룩 반점이 생기다가 말라비틀어지는, 그래서 담뱃잎의 상품가치를 없애버리는 괴질이 출현해 파산하는 농가가 속출했다. 이 괴질은 19세기 초 콜롬비아 담배농장에서 수입한 담배를 통해 유럽 중 독일로 유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부분의 신종 감염병에서 볼 수 있듯이, 콜롬비아 등 남미 지역 야생종 담배 니코 티나 글루티노사Nicotina glutinosa에서는 피해가 나타나지 않았지만, 유럽에서 대량 재배하는 재배종 담배 니코티나 타파 쿰 Nicotina tabacum에서 피해가 크게 나타났다. 아메리카에서 공생관계를 유지하던 바이러스가 유럽으로 건너와 담배산업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바이러스 습격사건이었다. 날로 커져만 갔던 괴질로 인한 담배산업의 피해 때문에 유럽 각국은 세수 확보에 비상이 걸렸을 것이라고 쉽게 추측할 수 있다. 그래서 그 괴질의 정체를 밝히고, 피해를 예방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하는 것으로 그 당시 현안으로 떠올랐을 것이다. 담배 괴질을 밝히는 과정에서 담배 모자이크 바이러스의 존재를 발견한 것은 당시의 필요에 의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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